난달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 시내 전역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이하 지하철 참사) 10주기를 맞아 본교 글로벌프라자 경하홀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유가족들의 훌쩍임만이 가득했다. 추모식은 화재가 일어났던 시각에 묵념을 한 뒤,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추모 영상이 상영되었고 유족들의 눈가는 눈물로 더욱 짙어졌다. 대구 지하철 추모사업 자문 위원회 위 홍원화 교수(공대 건축토목공학)는 10년 간 진행된 추모식과 심포지움에 대해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더불어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0주기를 맞은 대구 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경 정신분열자인 한 50대 남자의 방화가 원인이 됐다. 그로 인해 희생자 192구 부상자 151명의 큰 인명피해를 남겼다.

 

희생자 유가족들, 2003년 2월 18일 그날에 시간이 멈추다지하철 참사 비상대책위 위원장 박성찬 씨는 “유가족들은 명절이나 참사가 일어난 2월이 가까워지면 평소보다 더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곤 한다”고 말했다. 추모식에 참여한 지하철 참사 유족회 회장 김충국 씨는 참사로 16세의 딸을 잃었다. 김 씨는 “유가족으로서 겪는 트라우마가 있냐는 질문에 항상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가족 몰래 화장실 문을 잠그고 매일 울곤 했다”며 유족들의 아픔을 토로했다. 이유민(21) 씨는 친자매처럼 지내던 사촌언니를 잃었다. 이 씨는 "10년 전 연기가 자욱한 중앙로역 입구에 서서 저녁까지 사촌언니를 기다렸다"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100명이 넘는 유가족들과 시민회관에서 살다시피하며 언니를 기다렸다. 부모님의 경우 대구 시내 병원을 모두 뒤지며 신원파악이 안 된 환자들을 확인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씨의 사촌언니는 두 달 후 유골가루로 돌아왔고 가족들은 충격에 빠져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또한 이 씨는 "사고 후 몇 년 간 1호선을 이용하지 못했다"며 "지금도 중앙로역을 지날 때 그 날의 냄새와 끔찍한 현장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부상자 151명, 그들에게 남은 두 번째 상처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고통을 겪고 있다. 참사 후 부상자 가족 조사를 진행했던 이성환 교수(계명대 일본학)는 “주변의 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은 아직도 자신의 증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며 “작은 건강 이상에도 그 원인을 당시 사고에서 찾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미흡한 사후 조치로 다시 한 번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이 교수는 “부상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들에게는 1차 보상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교수는 “현재 국민 성금이 100억 원 가량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남은 성금은 방치된 상태”라며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보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참사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건강검진을 대구시에 요구하고 있으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희생자 192구, 그들이 쉴 곳은 어디에현재 대구시는 ‘시민안전테마파크(이하 테마파크)’를 조성해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인근 동화사집단시설지구 상인들이 테마파크 일대에 희생자를 묻은 것에 반발해 지난 2010년부터 유족들의 참배를 막고 있다. 지난 달 18일 이곳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도 유족들이 테마파크 내 안전상징조형물 앞에서 헌화와 참배를 하려하자 인근 상인들이 이를 막아 마찰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이에 별다른 조취를 취하지 않고 있다.지난 10년 간, 테마파크가 만들어지기까지 유족들은 계속 마음의 상처를 입어왔다. 유가족 김수락 씨는 “대구시는 보상을 마무리 짓고 2~3년 안에 추모 공원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공원 설립 지정 장소는 주민 반대 등 여러 문제에 부딪혔지만 대구시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테마파크 설립을 위해 성금과 더불어 정부로부터 수십 억을 지원 받았음에도 유가족과 단 한차례의 공청회도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했다”고 말하며 “대구시의 최고 기관이 시민들과의 공개적인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들의 아픔10년 전 사건당시 본교 학생들 대부분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이었다. 그때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기에 많이 어렸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많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유가족들의 아픔을 조금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의 우리가 10년 전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추모식에 참여한 유가족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노력’을 촉구했다. 참사의 아픔은 혼자만의 일이 아닌 전체가 고민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 노력 또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할 수 있다. 추모식 봉사활동에 참여한 홍리지(공대 응용화학 10) 씨는 “직·간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한 홍 씨는 “특히 한 참여자가 쓴 ‘하늘나라에서 편히 잘 지내거라 우리공주님 심은아 정말 미안해 아빠가’라는 글귀를 보면서 유족들의 아픔이 크게 와 닿았다”며 관심과 참여를 통해 그들의 아픔을 느끼고 돕기를 권유했다. 이 교수는 “살아남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살아있는 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며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사진: 이상지 기자/lsj12@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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