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시절 영어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문법의 한 부분에 대해 질의를 한 적이 있다. 원어민 선생님의 대답은 “그게 원래 그런거야(That's the way it is!)"였다. 필자는 당시 원어민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가를 알지 못했다. 다만 영문법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내 자신이 꼭 알아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곧 이것은 영어문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영어는 반드시 주어가 문장에 나타나야 하는 언어인 반면, 한국어는 문맥상 분명한 경우 주어가 반드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에게 “그 책 이미 읽었어”라고 말하는 것이 한국어에서는 이상하지 않지만, 영어의 경우 주어 없이 “Read the book already.”라고 한다면 비문이 된다. 만약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한국어는 주어가 나타나지 않아도 되냐고 묻는다면 “한국어 문법은 원래 그래”라는 말 이외에 더 좋은 대답이 있을까?

모국어 화자로서 문법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지만, 누가 왜 그런지 물어보면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는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 이 문제는 “우리는 어떻게 문법을 습득하게 되었고 우리가 아는 문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 모국어 문법을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듯하다. 물론 초중고 국어시간에 국어 문법을 학습한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국어를 문법에 맞게 쓰고 있었다. 그 이전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국어 문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언어 습득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보통 아동들은 태어나서 첫 단어를 말하기까지 10-13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18개월 정도가 되면 두 단어를 붙여서 쓰기 시작하고, 2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다양한 문장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5세 정도가 되면 문법 발달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5년 내에 아동들은 한 언어의 문법체계를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생각할 수 있는 언어습득 방법은 아동들이 이 기간 동안 언어를 부모나 형제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운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행동발달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언어를 아동이 모방하고, 모방을 통해 언어를 학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행동주의론은 1950년대 스키너라는 행동주의 심리학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언어를 경험만으로 습득한다는 이론은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만약 경험에 의해서 아동이 언어를 학습한다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학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아동들은 자신들이 들은 것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이나 구문을 구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아동들이 경험에 의해 규칙을 유추를 해낼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유추에 의한 규칙을 찾아낼 때는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많은 언어 습득 연구들은 아동들이 시행착오로 인한 문법적 오류를 보이지 않고 모국어 문법에 맞는 규칙을 찾아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경험 이외에 무언가가 아동으로 하여금 규칙을 올바르게 습득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 아동들은 언어 규칙을 습득 할 때, 적게나마 문법 오류를 보이기도 하지만 학습을 통해 문법 오류를 수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동의 문법적인 오류를 일일이 고쳐주려고 노력하지 않거니와,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동은 부모가 문법적인 오류를 교정해 주려한다는 의도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셋째, 경험에 의한 학습은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동일 기간 같은 학습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면을 보인다. 모두가 어렸을 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고 해서 모두가 김연아와 같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그러나 언어 능력은 이러한 개인차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휘력의 차이는 있겠으나, 한국 사람이라면 문법적인 한국어를 기본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 

경험주의의 한계점들이 제시하는 바는 경험이 언어습득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언어 습득의 전부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국어는 아동이 처한 환경과 관계없이 모두가 동일하게 습득을 하게 된다. 또한, 언어의 습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배워서 학습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험에 의한 것도 아니고, 학습에 의해서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언어를 습득하는가?

촘스키로 대표되는 생성문법학자들은 언어 발달은 학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가 날개를 가지고 있고, 어류가 아가미를 가지고 있듯이, 인간이라면 언어능력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타고 났기 때문에 모든 아동들이 모국어를 빠른 기간 내에 쉽게 습득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가 유전적으로 타고 났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지만,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전에 의한 발달과 언어의 발달이 같은 패턴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서, 언어 역시 유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경학자들은 시력의 발달은 시신경이 후두엽에서 발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고, 시신경의 발달은 유전에 의해 프로그램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주목할 점은 유전에 의해 프로그램 돼 있는 것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생애 초기 어느 일정 기간 내에 활성화가 돼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신경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생애 초기에 빛에 노출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노출이 없다면 시신경이 발달되지 못해 시력 발달 장애가 온다. 이를 우리는 “결정적 시기 가설”이라고 부른다. 일례로 고양이가 태어나자마자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약 1년 후에 그 안대를 벗겨내면, 그 고양이는 양쪽 눈을 모두 뜨더라도 한쪽 눈의 시력은 결국 발달하지 못하는 결과를 신경학자들은 보여주었다. 여러 다른 동물실험에서 학자들은 유전에 의한 발달은 모두 이와 같은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생성문법학자들은 결정적 시기 가설이 언어발달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지니라는 아동이 부모의 학대를 받아 방에 13년 동안 갇혀 있다 이웃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 있었다. 지니는 언어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결정적 가설을 실험할 수 있는 적합한 케이스로 여겨져 많은 학자들은 그녀의 언어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몇 년 동안 다양한 방법의 언어교육 결과 지니는 어휘 발달은 있었으나, 문법적인 문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결국 문법은 결정적 시기를 넘어서는 발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유전적 발달과 동일한 패턴을 보이는 것은 언어 역시 유전에 의한 발달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유전에 의한 발달이기 때문에, 생성문법학자들은 언어 문법 지식 습득이 잠재적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앞서 보았듯이 한국어에서 왜 주어가 없어도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자체는 알고 있을지언정, 어떻게 우리가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눈이 있어서 사물을 볼 수 있지만, 어떻게 시각을 갖게 됐는지 지각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잠재적으로 습득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뇌에 가지고 있는 언어 문법 체계는 무엇인가? 그리고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는 어떻게 국어 문법을 습득하는가? 촘스키는 인간은 보편문법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우리 뇌에 모든 언어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문법체계가 이미 있기 때문에, 아동이 결정적 시기 동안 한국어를 경험하게 되면, 보편 문법체계가 활성화돼 한국어의 문법체계를 자동으로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두에서 소개한 영어와 한국어의 주어 존재의 차이에 대해 조금 심화된 설명을 해보자면, 보편문법은 주어의 존재에 대한 매개변항이 있다. 한국어를 경험한 아동의 경우 이 매개변항이 “필요 없음”으로 정해지고, 영어를 경험한 아동의 경우 “필요함”으로 정해진다. 그러므로 한국어 문법은 주어가 선택적으로 나타나게 되고, 영어의 문법은 주어가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승완 교수(인문대 영어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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