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인간의 언어능력의 기원과 발달에 대해서, 피아제와 촘스키는 거의 상반적인 입장을 주장한다. 피아제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능력의 발달과정은 새로운 가능성들을 점진적으로 개방시키는 진정한 구성을 포함하는 ‘학습과정’이다. 반면에, 촘스키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능력의 발달은 유전적으로 조건화된 ‘성숙과정’이다. 따라서 후자에 있어서는 인간에게 고유한 언어능력의 발달과정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일련의 가능성들의 단순한 현실화만을 포함한다. 양자 사이의 이러한 대립은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기능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상반된 의견을 제시한다. 피아제는 환경의 기능에 ‘형성적 역할’을 부여하지만, 촘스키는 단순한 ‘격발적 역할’만을 인정한다. 광의의 관점에서 보면, 인지철학에 대한 양자의 대립은 합리론과 구성주의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다.

2. 피아제의 구성주의

피아제는 한 토론장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구성주의의 인식론적 전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언급한다.

"인식은 주관의 구성적 활동 없이 관찰들에 대한 단순한 기록으로부터 결코 유래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오십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어떠한 종류의 선천적 혹은 생득적인 인지구조도 인간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지성의 기능만이 단지 생득적이고, 이러한 지성의 기능이 외적 대상들에 근거하여 수행된 연속적인 행동들의 조직화를 통해서만 구조를 창조한다"

피아제는 이러한 구성적 과정을 자동 조절적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기술한다. 피아제가 주장하는 자동 조절적 메커니즘의 주요 장치는 ‘반성적 추상화’와 ‘구성적 일반화’, ‘동화’와 ‘조절’, 그리고 이들의 다양한 하위 장치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장치들의 통합적 기능은 보다 상위의 상태의 균형화를 연속적으로 야기할 수 있다.  

피아제에 따르면. 이와 같은 원초적인 차원의 행동세마로부터 우리의 인식이 등록되기 시작한다. 피아제는 이러한 원초적 차원의 행동세마를 실천적 개념이라고 명명한다. 균형화의 메커니즘은 이러한 새로운 세마 및 하위 세마들에 계속해서 작용해 보다 더 심오한 변별화와 보다 더 큰 일반화를 구성하게 돼, 세마들의 체계 및 하위 체계들을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하여 나중에는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추상화를 수행하게 되며, 급기야 내적으로 자기 일관성을 유지하고 외적으로 모든 대상들에 적용될 수 있는 복잡한 개념 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단계에서 온전한 전체적인 언어 체계가 작동할 수 있게 된다.

피아제의 인식론의 핵심적인 사항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첫째로, 피아제는 기능과 구조를 실질적으로 구분한다. 촘스키와의 논쟁에서 분명하게 반복하고 있듯이, 그는 어떤 인지적 기능들은 생득적일 수 있지만, 구조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둘째로, 언어 학습은 그 자체 보다 상위의 개념인 인지발달의 통합적인 일부분으로 전자는 후자와 별도로 설명될 수 없다. 셋째로, 인지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이러한 자동 조절적 메커니즘은 세포에서부터 고도로 복잡한 행동적 지평에까지 계속적으로 작동하는 우주적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한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넷째로, 인지발달과정을 통해서 구성된 인지구조들은 엄밀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개괄적인 차원에서 논리적 필연성의 특성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피아제가 반복해서 주장하듯이, 구성주의의 중심 문제는 새로운 조작과 구조들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들이 선행하는 결정적 구조에서 근거하여 구성된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하여 나중에 논리적 필연성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3. 촘스키의 선천성 논증

촘스키는 언어사용을 가능케 하는 고증된 핵(FN)을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참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촘스키에게 있어서 FN은 결국 ‘보편문법체계’(UG)이며, 후자는 선천적인 것이다. 이는 언어능력의 가능성의 조건이며 따라서 언어학습의 사전적 조건이다. 그런데, 촘스키에 따르면, FN, 따라서 UG가 가지는 전형적인 특성은 규칙들의 ‘구조의존성’(SD) 또는 ‘명시주어조건’(SSC)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FN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 왜 이것이 선천적인 것이라고 가정해야만 하는가? 촘스키에 따르면, 언어습득과정을 분석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결정된 원초적 상태(S0)로부터 일련의 연속적인 상태들(S1, S2,..)을 경유하여 급기야 견고한 상태(SS)에 도달함을 관찰한다. 이러한 견고한 상태를 조사하면서, 우리는 내적으로 표상된 문법에 관한 가설을 구성한다. ... ‘관련된 경험’(E)에 대한 충분한 기록을 가정하면서, S0의 특성에 관한 두 번째 질서의 가설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가설을 E에서 S0에로 나아가는 함수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촘스키의 전략은 간단하다. 촘스키에게 있어서, SS는 획득된 언어적 능력이며 내적으로 표상된 문법이다. 우리는 생성문법(GG)의 관점에서 SS에 관한 최초의 귀납적 추론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GG는 SS에 대해서 제시된 일종의 귀납적 표상이다. 이제 다시 GG의 속성들을 해명하면서, 우리는 S0에 대한 귀납적 추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GG의 속성, 따라서 SS의 속성은 관련된 경험(E)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되지는 않는다. 촘스키의 저작들에 있어서, E는 제한적이고 탈락적인 단편적 문장들이다. 말하자면, E는 이제 막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 중에 있는 아동들의 불안정한 문법으로 구성된 문장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SD와 SSC와 같은 속성은 UG의 구성성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속성들은 원초적 상태인 S0에 귀속된다. 결국 S0는 다른 어떠한 가능적 문법보다도 GG를 선택하려는 생득적 성향을 갖는다. 결국 촘스키에게 있어서, FN = UG = S0이다. 따라서 FN은 유전적으로 결정되며 결국 선천적인 것이다.

4. 촘스키의 선천주의 가설에 대한 피아제의 반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촘스키는 인간들의 언어사용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고유한 언어능력의 선천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피아제는 이점에 대해서 반대한다. 이러한 선천적 능력을 촘스키는 ‘고정적인 핵’(FN)이라고 명명한다. 촘스키에게 있어서, 이 고정적인 핵이란 결국 ‘보편문법’(UG)을 의미한다. 피아제는 촘스키가 말하는 이러한 ‘보편문법’을 ‘합리적인 언어구조’ 또는 ‘논리-수학적 구조’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모든 언어 학습의 사전적 조건인 이러한 합리적 구조를 아이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피아제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피아제의 논증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첫 번째 논증은 FN의 생물학적 논증 불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즉 FN이 선천적인 것이라면, FN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피아제의 관점에서는 생물학적 차원으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없는 심리학적 구조들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설명이 아니다. 그런데 촘스키도 엄밀한 의미의 영성주의자도 아니고 관념론자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가 생물학적으로 구성된 결과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결국은 신다윈주의의 관점에서 즉,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러한 구조의 구성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다윈주의의 설명은 ‘돌연변이 이론’ 또는 ‘자연선택 이론’에 근거한다. 그런데 FN이 ‘돌연변이설’ 또는 ‘자연선택설’에 의존할 경우 우리는 FN의 논리적 필연성을 보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나 자연선택은 완전히 우연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성이나 언어도 우연적인 선택의 결과이며 결과적으로 촘스키의 FN은 그 확고 부동성을 상실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논증은 선천적인 FN을 가정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필요하다는 것을 해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피아제의 입장에서 볼 때 선험적인 모종의 논리적 구조를 전제해야만 언어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조들 그 자체 감각-운동적 지성에 의해 구성된 결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피아제는 감각-운동적 시기에 구성되는 대상연속성 개념을 토대로 하여 구체적 조작기의 전군의 구조를 구성하고 다시 후자를 토대로 하여 형식적 조작기에 INRC변형구조를 구성하는 지성의 발달과정을 잘 해명했다.

마지막으로, UG의 보편적 속성인 ‘구조-의존성의 원리’에 대해서, 촘스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동들이 ‘The man is tall.’과 같은 평서문에서 ‘Is the man tall?’과 같은 의문문을 형성하는 방법을 학습할 때, 그는 ‘구조 독립적 가설’(H1: 문장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is를 문두로 이동하라. 이 규칙에 따면, ‘The man who is here is tall.’이라는 문장은 ‘Is the man who here is tall?’로 변형되어 부적절한 문형이 된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구조 의존적 가설’(H2: 첫 번째 명사구 다음에 발생하는 최초의 is를 문두로 이동하라. 이 규칙에 따르면 위 문장은 ‘Is the man who is here tall?’로 되어 정상적인 문형이 된다.)을 선택한다. 그러나 피아제에 따르면, 구조-의존성의 이러한 경향성은 아동이 H1보다는 H2에 대한 선호도를 선천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의미론적 구조 체계와 더불어 그가 언어학습을 한다고 하는 사실을 함의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인지-의미론적 구조는 통사론적 구조와 매우 강력한 유사성을 가진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말하자면 명사 또는 명사구 다음에 동사가 오는 통사론의 ‘주어-동사 관계’는 대상이 먼저 인지되고 다음에 그 대상의 동작이 인지되는 ‘대상-행동관계’의 인지구조에 근거한다.

의미론적인 차원에서 언어 능력을 해명하는 이러한 논증을 참조할 때, 촘스키가 제안한 GG 또는 UG 같은 선천적 설명보다는 언어학습이론에 근거한 피아제의 구성주의적 후천적 설명이 보다 더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문장수 교수(인문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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