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라는 가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이 지은 한국 최초의 가곡‘동무생각’이다. 가사에 나온 청라언덕은 1900년대 대구의 ‘몽마르트’라고 불릴 만큼 대구의 많은 근대예술가들에게 예술적 모티브를 준 곳이다. 대구에 남겨진 인간 박태준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고, 청라언덕을 배경으로 박태준의 삶을 조명한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개막작 <청라언덕>을 통해 가을날 저녁 오페라의 향에 취해보았다. 더불어 <청라언덕>의 작곡가 김성재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페라 <청라언덕>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했다●


지난달 12일 시작해 30일간 진행되는‘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10주년 기념 개막작인 <청라언덕>. 이를 보기 위해 12일 저녁 대구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오페라하우스에 가까이 갈수록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공연 전 개막식이 야외 마당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가본 오페라 축제현장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기자들은 ‘뜨악’하며 당황했다. 사람들이 다들 검은색의 정장을 차려입었고 기자들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드러내듯 편안한 청바지 차림에 캐주얼한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오페라는 정장 차림으로 관람하는 것이 기본예절로, 공연 성격과 분위기에 맞춰 옷을 입는 것이 좋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사계의 정취가 느껴지는 4막의 오페라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에 펼쳐진 청라언덕의 봄 풍경에 깜짝 놀랐다. 만발한 벚꽃은 눈부셨고, 백합을 들고 청라언덕에 앉아있는 무용수들은 정말 한 송이의 꽃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취해있는 동안 무대 한켠에서 노년의 박태준이 등장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백합 같은 동무’이자 사랑했던 연인 유인경과의 추억 이야기를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아계신 노년의 할머니들도 옛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노년의 박태준과 젊은 박태준이 함께 노래를 하는 무대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환상이 펼쳐졌다. 1막 봄은 박태준과 유인경이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누고 각자의 미래를 위해 다음 날을 기약하며 헤어지면서 마무리된다.

오페라 어렵지 않아요! 우리말로 듣는 오페라
대학생들에게 오페라는 연극이나 뮤지컬보다 좀 더 멀게 느껴지는 문화예술 장르이다. 아마 오페라는 전부 외국어, 특히 이탈리아어로 공연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청라언덕>은 전부 한국어로 공연됐다. 공연을 보러온 외국인 관객들이 무대 상단에 걸린 화면의 자막을 봐야했다. 처음 보는 오페라의 대사가 전부 레치타티보(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로 이루어져서였을까? 아니면 공연장의 푹신하고 편안한 의자 탓일까? 이어진 2막 ‘여름’에서는 졸음이 몰려와 살짝 졸기도 했다. 2막에서 박태준은 사랑했던 여인 유인경과 다시 만났지만 그녀는 병색이 완연했고 또 다시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별의 아픔은 박태준을 성숙시키고 ‘동무생각’이라는 명곡을 탄생시켰다. 노년의 박태준과 현재 그의 아내인 김봉렬이 노래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과거 젊었을 때의 자신들이 만난 장면을 무대 위에서 마주했다. 두 명의 박태준과 김봉렬의 모습을 보며 오페라의 대본을 쓴 작가의 연출력에 감탄했다.

오케스트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음악 소리
3막 ‘가을’의 무대는 박태준이 연인 유인경을 떠나보낸 슬픈 마음을 표현해서인지 무대 역시 총 4막 중 가장 황량하고 쓸쓸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모두 마이크를 차지 않고 있었다. 오직 목소리의 힘만으로 저 멀리 뒤편의 관객들의 귀까지 소리를 전달해 마음을 울렸다. 뿐만 아니라 무대의 바로 앞,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한켠에서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로 최승한 지휘자를 필두로 대구국제오페라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노래와 연주 모두 어떠한 기계장치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이처럼 오페라에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성악적인 발성을 한다는 뜻이다. 뮤지컬 장르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하는 점이 오페라와의 큰 차이 중 하나다.

시리도록 아픈, 슬프도록 예쁜 4막의 ‘겨울’
사계절은 인생과 자주 비교된다. 오페라 <청라언덕>의 4막은 청라언덕의 사계절의 모습을 다 보여주면서 박태준의 삶과 음악, 사랑을 표현하기에도 알맞은 구성이었다. 청라언덕의 겨울은 모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시리도록 아프고 슬프도록 예뻤다. 유인경의 장례식에서 절규하는 젊은 박태준과 멀리서 이를 바라보고 있는 노년의 박태준, 이에 대비되는 흰 눈에 뒤덮인 환한 무대의 모습은 아이러니컬했다. 마지막으로 전 출연진이 무대로 나와 다 함께 ‘동무생각’을 부르고, 무대 위에는 꽃과 눈이 뒤섞여 날리는 장관을 이뤘다. 오페라 <청라언덕>의 연출가 정갑균 씨는 “우리 손으로 만든 한국 오페라가 이번 축제의 개막작이 되어 관객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다”며 소감을 말했다. 관람객 서근희(대신대 피아노 10) 씨는 “박태준 작곡가의 노래 5개를 풀어서 다시 만든 것이어서 새롭고 신선하게 들렸다”며 “특히 유인경 역의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인상 깊게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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