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00만 명이 넘는다. 인구의 2.2%에 달하는 수치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흐름 못지않게 국경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이동도 늘었다. 이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소위 ‘3D’,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스러운(dangerous) 업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요르젠(가명), 미르유(가명), 예룬(가명) 꾼냥(가명) 씨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들어봤다●

                                                              ▲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

지난 2010년 8월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온 요르젠 씨는 현재 34살이다. KBIZ(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 한국에 온 그는 인천에서 3일간 있다가 사업주를 따라 대구로 내려왔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0시간을 일해 매달 받는 돈은 110만원에서 120만원 사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게 당연시 된단다. 그렇게 1년 정도 일하던 때였다. 옆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 2명이 일하던 도중 손이 잘려나갔다.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목격한 요르젠 씨는 겁에 질려 위험성이 덜한 다른 일자리를 찾았고 지금은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1년 1개월째 다니고 있는 이곳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여전히 지켜지지 못했다. ‘이정도면 만족한다’는 그에게 최저임금은 이제 사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네팔인 미르유 씨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2년 28살 젊은 나이로 한국에 왔다. 동남아시아에 일자리가 부족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대부분 타국에서 일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외국인 채용을 허용한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2004년 전이라 개인적으로 800~900만원을 들여 브로커를 통해 한국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이주노동자가 많지 않아 사회적 시선이 더욱 따가웠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차별을 알리기 위해 성서 이주노동자센터를 찾았고 이를 계기로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마저도 사업주가 알면 제지하기 때문에 매번 몰래한다고 밝힌 그는 10년간 한국에서 충분히 돈을 벌고도 고국으로 가지 않는 이유로 “내가 받은 차별이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밝혔다. 네팔에서 온 43살 예룬 씨는 2009년 EPS(외국인 고용관리시스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해 바로 일을 시작했다. EPS는 한국어 능력시험을 치른 외국인들을 사업주에게 알선하는 고용노동부의 기관으로 2번에 걸친 사전 취업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방침이지만 실질적으로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공업·건축업·어업 비자 중 ‘어업비자’를 신청한 예룬 씨는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어부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건강이 악화돼 치료 중에 있는 그는 일하면서 건강이 악화돼 찾은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비싼 수술비 때문에 수술을 미뤄왔다. 생활이 불편해진 2달 후에서야 결국 허리수술을 받은 그는 그날 이후로 회사에서 연락이 끊겨 6개월간 일을 쉬고 있다. 현재 예룬 씨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나에게 인권은 없었다’
“보통 동료끼리 밥 같이 먹잖아요, 근데 저보고는 피부색 물들인다고 저리가라 해요” 이주노동자가 드물었던 2002년부터 지금까지 약 10년간 성서산업단지에서 일한 미르유 씨는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없다고 단언했다. “처음 일한 날부터 ‘너희나라 물은 있냐? 쌀은 있냐’는 식의 무시발언을 같은 사람에게 매일 들었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처음에는 차근히 설명했지만 나중에는 너무 화가나 ‘그래! 우리나라 아무것도 없다’고 소리쳤죠” 기분이 안 좋은 것을 티내면 ‘남의 나라에서 권리 찾을 생각마라’며 오히려 더 타박해 제대로 항의할 수도 없었다는 그는 돈 문제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고국에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차별적 눈초리는 작업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버스를 타 2인석에 앉으면 아무리 만석이라도 내 옆자리는 항상 비어있었어요”라고 말한 미르유 씨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별적 시선은 다를 바 없다고 토로했다.
어부로 일하는 예룬 씨도 다르지 않았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하루 쉬겠다고 했더니 ‘집에 가라’고 해,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이후 부상악화로 수술을 하자 사장과 연락이 끊겨 6개월째 실직자다. 몸이 아프니 직장도 구하기 힘들다는 예룬 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주목받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라고 체념했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돼 한국어가 서툰 꾼냥(가명) 씨는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 종일 일해서 받는 돈이 한 달 140만원이지만 이마저도 받지 못했다. 월급명세서는 커녕 밀린 월급도 주지 않아 일을 그만 뒀다는 그는 불법체류자라는 꼬리 때문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도 권리 찾기는 ‘포기’라고 말했다.

누굴위한 법 개정인가
지난달 2일, 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에 대한 내부업무지침’을 변경했다. 이는 불법파견 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를 강화시킨 것으로 노동부는 이 지침을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잦은 사업장변경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에 외국인노동자 인권단체는 고용허가제에 독소조항이 담겨 있어 불법체류자 증가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활동가들은 체류기간 3년 동안 사업장 변경 횟수를 3회로 제한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르유 씨는 “이번 개정은 사업자에게 이주노동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더 큰 힘을 준 것”이라며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더욱 안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주노동자들은 이번 개정법을 노예제도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현재 불법체류자인 예룬 씨 또한 “불법체류자인 것을 빌미로 권리를 더 박탈당하는데 사업장 이전의 제한으로 더욱 인권유린이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해서는 사업장이전 제한 개정이 아닌 비자를 연장하는 개정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 옥동진 기자/odj12@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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