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이 절대평가제를 상대평가제로 전환하였을 때 찬반이 많았다. 그러나 상대평가는 사회에서 우리 대학 성적을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사회에서는 대학마다 서로 다른 가중치를 부여하여 그 성적을 인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평가제 하에서도 성적 인플레 현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재이수를 통해 성적을 세탁할 뿐만 아니라 교묘한 방법으로 낮은 성적을 받은 과목을 지워버린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이 1학년 교과목을 재이수하여 상위 성적을 싹쓸이하고 1학년 학생들이 다시 4학년이 되어 1학년 과목을 재이수하는 어처구니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기까지 한다. 학생회 선거 공약에는 ‘학점 포기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나붙기도 했다. 좋은 성적을 받은 과목만 성적표에 표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결국 상대평가제의 긍정적 취지는 무색해지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초래되고 있다.


우리 대학은 상대평가 대상과목을 대폭 확대하여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고 재이수 과목 성적 상한선을 A-에서 B+로 하향 조정하였다. 어떻게든 재이수를 제한하고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의 일부 대학에서는 재이수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재이수 성적 제한이나 재이수 금지 등 강화되는 학사 규정에 대해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대응이라는 점은 원칙적으로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도입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엄격한 학사관리가 장기적으로 학생들 자신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하고 학교는 단순한 제도 도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이하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학의 강의실은 즐겁고 유익한 교육 현장이 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학문적 소통으로 시끌벅적하고 그 결과를 누구나 수긍하는 그런 강의실, 오직 성적 하나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평가 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을 키워주는 그런 학사제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과목 이수 트랙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유도하여 어떤 내용의 학습을 수행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를 개발한다든가, 선행 학습이 요구되는 과목들은 엄격하게 교육목표를 설정하여 통과 여부만을 측정한다든가 하는 교육과정의 혁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병행될 때 학생들이 엄격한 학사관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활발하고 즐거운 강의실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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