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신문이 1952년 9월 1일 전국 대학에서 세 번째로, 그것도 학생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신문을 창간한 이후 어언 60년이 흘렀다. 그간 제호도 경북대학신문에서 경북대학보로, 경대신문으로, 다시 경북대신문으로 변천을 겪었다. 신문사 사옥도 본관에서 학생회관으로, 신학생회관으로, 복현회관으로 이주를 거쳤다. 편집 디자인도 초창기 세로쓰기에서 한글 가로쓰기, 전자조판, 그리고 인터넷판 등 시대흐름에 대처해왔다. 신문 발간 주기도 월간에서 격월간으로, 순간에서 주간으로 변신의 과정을 겪었다.


경북대신문의 60년 역사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근대화와 민주화의 시대적 격랑 속에서 진실과 비판이라는 대학정론지로서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 때로는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청년 정신이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70년대 유신 시절 경북대신문사에서 발생했던 두 번의 정간 사건은 의미심장하다. 1975년 당시 학생 기자들은 대학신문의 제작 과정에서 학교 당국의 부당한 간섭에 항의하여 ‘대학언론의 자율권과 편집권을 보장하라’ 등 5개 항의 대학언론 실천선언문을 발표하며 “대학당국의 부당한 간섭이 있을 경우 신문 제작을 거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기자들은 제적, 파면, 강제 입대 등의 고초를 겪고 신문은 정간되었다. 1978년에도 똑같은 이유와 경위로 신문은 또 한 번 정간 사태를 맞는다. 1978년의 정간 사건은 『경북대신문 50년사』에 누락되어 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대학 신문의 본연의 기능 회복을 위한 학생 기자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경북대신문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북대신문의 이러한 비판과 저항의 역사는 대학신문은 깨어있는 청년의식의 장이지 ‘대학의 기관지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금 대학신문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의 바람으로 인한 종이 신문의 위기가 대학신문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오직 취업에 골몰하느라 소위 청춘의 고민조차 유예해버리는 대학의 독자들은 더욱 신문을 읽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유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전자책이 유행을 선도해도 종이책의 인기는 여전하며, 인터넷신문에서 기사를 검색하는 시대에도 권위있는 종이신문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학신문은 깨어있는 청년 의식의 장으로 거듭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북대신문은 청년의 비판 의식을 고양하고 앞장서서 실천해야 한다.  신문을 제작해야하는 기자 역시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등의 외적 환경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진실의 추구와 날카로운 비판 정신은 대학 신문의 본연의 기능이다. 선배 기자들의 ‘대학신문은 대학의 기관지가 아니다’라는 선언은 바로 대학신문의 본질과 방향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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