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고등학교 시절 많이 애송한 조지훈의 대표작 ‘승무’이다. 그는 경상북도 영양군 주실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교 도서관에서 80명의 학생들과 함께 지난달 17일 『영양과 안동의 문학』을 찾아가는 독서여행을 떠났다. 독서여행은 지난해 여름 본교에 처음 생겨 올해 8월에 어느덧 4회째를 맞이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 평균 60~80명이 참가하는 등 많은 학생들에게 일상 속 문화 탐방의 기회를 제공한다. 독서여행은 작가의 고향과 작품의 실제 배경을 찾아가는 것으로 진행되었으며, 하계방학에 이어 동계방학 때에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조지훈문학관, 광산문학연구소, 도산서원을 둘러보았다.

경상북도 영양군은 대구에서 약 150km 가량 떨어져있어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지만 실제로는 산길같이 굽은 도로를 2시간 30분 지나야 도착할 수 있었다. 영양군은 ‘조지훈’과 ‘이문열’이라는 대문인을 낳은 문촌이다. 한양조씨의 집성촌이기도 한 주실마을은 일월산에서 내려오는 정기가 장군천을 따라 흘러와 고이는 곳이라고 한다. 일월산은 중국의 수양산에 비할 만큼 아름답고 빼어난 경관을 지녔다고 해서 선비들로부터 ‘수비산(首比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을의 한복판에는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이 널찍이 자리잡고 있었다.

호은종택에서 동쪽으로 270m 가량 걸어가면 볼 수 있는 조지훈문학관은 조지훈의 일생 및 가족사에서부터 작품 활동 시에 사용한 유품, 그의 육성으로 듣는 시 낭송 체험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다. 문학관에서 다시 호은종택 방향으로 100m 거리에 있는 지훈시공원은 자그마했지만 한 공원 전체가 한 명의 인물과 그의 작품만으로도 알차게 꾸며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공원에는 조지훈의 동상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동상으로 표현해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다.

이후 50여 분을 달려 두들마을 광산문학연구소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이문열 작가를 만났다. ‘언덕 위에 있다’는 뜻을 지닌 두들마을은 지난 2001년 건립된 ‘광산문학연구소’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기록된 음식조리법인 ‘음식디미방’이 저술된 곳으로 이제는 꽤 잘 알려진 관광지이다.

匡山文學(광산문학)이라는 현판 아래서 보이는 이문열 작가의 첫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마을의 아저씨였다. 그는 알퐁스 도데와 그의 고향 프로방스에 대한 일화를 시작으로 작가와 고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의 고향은 곧 작가와 문학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고향에 대한 감정이 40대가 될 때까지 좋지 못했다. 쓸데없는 고집이나 믿음, 전통에 얽매여 있는 듯한 고향의 느낌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생각에 다시 고향으로 찾아갔고 후진양성을 위해 광산문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서 고향의 의미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영양의 볼거리가 다양해서였을까. 안동에서의 일정은 무척 짧게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도산서원에서 이황 선생을 되새길 무렵 일정이 끝났다.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조지훈, 이문열, 퇴계. 영양과 안동을 내려다보며 세 사람이 술잔을 기울인다. 어느새 내 잔에도 술이 차있다. “원 샷!” 그들이 따라준 되새김 주 한잔에 졸음이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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