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성노인복지센터 복지사와 봉사자들이 천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영감 죽기전에는 너므(남의) 밭 빌려서 농사지어가 쪼매라도 돈벌고 했는데… 영감 가고 나서는 내 혼차 집에 있는 날이 많어. 하루종일 테레비 틀어놓고 그라지. 아들래미 있어도 며느리랑 즈그 먹고살기 바빠서 내한테 연락도 잘 안해. 즈그도 내 못 도와주는 처지니께 미안해서 더 (연락) 안하는 것 같애”

천순애(가명·76) 할머니는 대구시 북구 국우동에서도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을 굽이굽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4년 전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 보내고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천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호탕하게 웃으며 밝은 모습이었지만 짙은 외로움의 그림자는 가리지 못했다. 고혈압에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은데다 젊을 때 고된 일을 많이 해 관절이 안 좋은 천 할머니는 처방받은 약이 커다란 약봉지에 담아도 한움큼 삐져나올만큼 많다.

“대구시에서도 외딴곳이라 한 달에 한번 병원갈 때 약을 항그(많이) 타와. 약이 하도 많으니 먹고도 약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가물가물해서 또 먹을 때도 있고, 이 약이 어디 아플 때 먹는 약인지도 모르고 먹고 그라제. 병원 갈 때도 예전에는 집에서 버스타는데까지 걷는디 20분 쪼매 더 걸렸는데 요새는 걸어가다 앉아서 쫌 쉬고. 옳게 빠릿빠릿하게 못가니께 버스타러 나가는디도 40분은 더 걸려. 이래 외딴 데 누가 오겠어. 대접할 게 없어서 그렇지 사람 오믄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천 할머니 집 마당에는 화분마다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멀리 나가기 힘들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재미삼아 하나둘 키우고 있다고. 외로움을 가장 달래준다는 강아지를 자랑하는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밖에 있는 쪼매난(조그마한) 저거(강아지)는 내보다 더 자주 씻긴 다니께. 목욕한 날엔‘오늘은 씻었으니께 같이 자자’카믄서 내 옆에 재우고, 내 머리 염색하고 남은 걸로 염색도 시키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기 얼마나 기여븐지. 자(쟤) 때문에 심심한거 잊지”
노인문제에 무관심한 20대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질문에 할머니는 “당부할거 없어. 어머니 아버지한테 잘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그라믄 최고지”라며 활짝 웃었다.
북구 읍내동 골목 깊이 위치한 이윤희(가명·86) 할머니가 거처하는 집은 허리를 깊이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나지막했다. 귀가 어두워 질문을 여러 번 해야 겨우 대답했던 이 할머니는 제주도에서 본처로 인정받지 못하고 힘겨운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다. 그곳에서 10년이 지나서야 그는 홀로 힘들었던 삶을 빠져나왔다고. 이 후 대구 이곳저곳을 다니며 외로움에 익숙해진 할머니는 복지센터의 ‘말벗 서비스’도 거부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댕기던 큰 아들넘도 있었고 그 밑에 중학교 댕기던 딸래미도 있었어. 지금 쯤이믄 시집 장가 다 갔긋지. 제주도에서 살던 때가 아즉꺼정(아직까지) 다 생각이 나. 근디 전화번호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니께 도통 연락할 수가 있나. 보고싶지마는 그러믄 뭣해 오래되서 이젠 무덤덤 하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꺼여. 가만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여그까지 살았는지 신기혀. 무서웠을텐디 그때는 워낙 살기바빠서 그렇지도 않았어. 요즘에는 주변에 같이 살던 할매들도 한둘 저 세상 가니까는 더 적적허긴 혀. 그래도 워낙 옛날부터 혼자였으니께 그런 것도 이제 잘 몰러. 티비만 못살게 굴제”
혼자인 게 편해서 사람 많은 곳은 안 가는 이 할머니지만 가족이 붐비는 명절 때엔 홀로 집을 지키는 게 쓸쓸하다고 했다. 이 때 이것저것 싸와서 할머니의 빈집을 채워주는 복지사들과 이웃이 큰 힘이 된다고 한다.

북구에 위치한 효성노인복지센터에는 현재 4명의 복지사가 100여 명의 65세이상 노인을 돌보고 있다. 전용우 원장은 최근에 대두되는 노인문제에 대해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경우가 증가하는데 버려진 노인들은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며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당수의 노인들의 ‘가족 방치’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한 노인복지센터의 증가의 필요성에 대해 전 원장은 “수명연장의 결과로 만 65세 이상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요양센터의 수요 또한 증가하는 것 같다”며 “특히 옛날 대가족형태를 통해 부양가족이 노인에게 일종의 ‘복지’를 하고 있었던데 반해 핵가족이 많은 요즘, 자식과 떨어져 사는 어르신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 곳의 사회복지사 손다혜 씨는 “생각보다 노인복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잘 돼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인문제에 대한 사회적 접근에 대해선 “예전과 달리 ‘관심’만으로 봉사활동을 오는 경우가 드물다”며 “복지 관련 학과에서 실습오거나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오는 학생이 많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최근 대학교에서 많이 생기고 있는 복지학과에 대해 전 원장은 “졸업 후 자동으로 취득되는 자격증을 가지고 바로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실습위주의 강의를 많이 듣는 것과 더불어 평소에 봉사활동을 많이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 복지사는 “한 어르신이 어떤 대학생이랑 부딪쳐 팔을 다쳤는데 ‘괜찮으시죠? 괜찮으신걸로 알고 가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냥 떠나더라”며 “대학생들이 어른 공경은 고사하고 취업과는 무관한 것에는 무관심한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본교 학생들도 소외 노인을 보는 시각이 비슷했다.
평소 노인문제에 대한 질문에 강지아(공대 환경공학 09) 씨는 “평소에는 아무생각이 없지만 쓰레기 줍는 모습을 보면 ‘자식들은 뭐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배현재(경상대 경영 09) 씨는 “사람들이 대체로 노인들에 대한 거리낌이 있는 것 같다”며 “약자라는 생각보다는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교 김유진 교수(보건복지)는 노인문제에 대한 대학생의 무관심에 대해 “아직 젊고 학생이다 보니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세대 간의 교류가 없고 요즘 학생들이 워낙 바쁘다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김 교수는 “계단, 보도블럭, 스마트폰 등 세상이 젊은 사람 위주다 보니 연령차별주의가 생긴다”며 노인에게 관심 가지기 힘든 사회구조 또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 이윤희(가명) 할머니가 말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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