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4년 동안 방송계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권력기관을 총동원한 KBS사장 해임, 낙하산 사장 임명으로 인한 YTN 해고사태, MBC ‘PD수첩’ 제작진 체포, MBC 사장 사퇴 등 한마디로 '방송잔혹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정권의 선진화 구호는 방송에서는 무색할 지경이다. 정권의 방송장악에 저항하는 많은 방송인들은 탄압을 받고 정체성을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곧 끝날 줄 알았던 KBS·MBC·YTN파업이 벌써 2달째다● 

지난 26일 노숙농성을 진행하기 위해 텐트를 쳐놓은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최승돈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Occupy KBS’ 문화제가 열렸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이하 새노조)는 이 날부터 1박2일간 ‘KBS를 점령하라’는 구호와 함께 노숙투쟁을 실시했다. 애초 KBS 본관 주변에 50개 가량의 집단 천막을 쳐 노숙투쟁을 하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제지해 KBS 새노조는 전국조합원총회를 마친 뒤 방송국 앞 여의도광장에 텐트를 설치했다. 또한 KBS 새노조는 이날 밤 촛불문화제를 열어 투쟁의지를 모아갔다.

촛불문화제엔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19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19대 낙선)도 참석했다. 심 대표는 “이명박 정권 4년동안 막가파식 추진력을 잊어선 안될 것”이라며 “그동안 일어난 일을 어떻게 수습하나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전했다. 정 의원 또한 4·11 총선을 두고 “그 날 여의도 국회 권력을 바꿨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못내 아쉽다. 총선 결과를 보고 MBC 조합원들은 무거운 표정을 지은 반면 김재철 사장은 희희낙락했다 한다. 너무 미안했다”고 말하는 등 정치인들의 ‘지지성 발언’은 촛불문화제의 열기를 더 했다. 두 의원은 “앞으로 이명박 정권의 총체적인 언론장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내리겠다”며 “언론장악을 둘러싼 음모를 샅샅이 밝히기 위해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관철시킬 것이며 낙하산 사장을 방지하는 법을 만들어 언론장악 시도를 못하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날 참여자 대부분이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했을 만큼 날이 추웠다. 사회를 보던 최승돈 아나운서도 중간에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올만큼 바람이 매서웠지만 노조원들의 투쟁의지를 식히지 못했다. 최 아나운서의 유머있는 진행과 함께 신입사원들의 공연, 그리고 노조의 몸짓 공연이 이 날 문화제의 분위기를 한 층 돋궜다. 

거세된 KBS,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KBS는 지난 달 6일 파업을 선언하며 공영방송 중 MBC에 이어 2번째로 파업에 참여했다. 새노조는 KBS의 제2노조로 기자와 PD를 중심으로 1천 여 명이 가입돼 있으며 KBS 김인규 사장 퇴진과 새노조 관계자 13명의 부당징계 철회 등을 내걸고 지난 6일부터 계속 파업 중이다. 더욱이 20일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인 최영경 기자가 해임 통보를 받자 팀장급 PD 간부들이 기자 해임에 반발해 보직을 던지고 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새노조 김현석 위원장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고 정권이 언론을 독점해서 언론이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를 바로잡고 언론의 가치를 올바르게 재실현하고자 파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방송파업의 정당성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어느 정권이든 언론에 대한 규제과 견제는 있었지만 이번 정권에서 탄압을 심하게 느꼈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KBS는 정권에 의해 ‘거세’ 당했다”고 밝혔다. 4대강, 한진 중공업, 쌍용자동차 등 당시 중요 사안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고, 정권을 비판하는 보도와 프로그램이 고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했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의외로 새누리당이 승리를 거둔 것이 언론파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사실 이만큼 파업이 장기화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적 환기로서 총선에 기대도 했었다”며 “하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석을 차지하며 우리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밝혔다.

 

‘제도개선 없다면 정치의 언론장악은 계속될 것’

한편 김 위원장은 “공영방송이라 자본에 대한 독립성은 좀 나은 편이지만 정부의 탄압을 받기는 더 쉬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며 방송사 내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번 언론노조파업에 대해 본교 남재일(사회대 신문방송) 교수 또한 “방송은 원래 정권영향을 많이 받았고 인사권의 통제를 받았지만 이번 정권 들어 심각성이 고조돼 문제가 크게 불거지게 된 것”이라고 정권의 언론장악에 공감했다. “사장 임명권이라든지 제도적인 부분에서 정치권력이 생산되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방송에서 정치권력의 입김이 사라지기 어렵다”고 조언한 그는 “다른 정치기구, 시민단체, 여론에서도 사장 임명 인사제 개선을 함께 주장해야한다”고 방송사 내의 제도개선에 모두의 도움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언론노조파업 콘서트가 일찌감치 매진되는 등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가 파업진행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언론에 비춰진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대부분 수도권지역에 한정돼있고, 대구·경북지역 시청자들은 여전히 이번 문제에 둔감한 것 같다는 지적이 있다. 남 교수는 “이번 파업의 장기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민들의 격려나 지지가 열악하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며 파업시점과 여태까지 언론이 해온 비윤리적인 행태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어 남 교수는 “이번 기회로 앞으로 언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며 “국민들과의 올바른 소통과 공감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언론이 믿을 건 국민밖에 없다. 국민은 연 2조 이상을 수신료로 지불하고 있고 소비자로서 제대로 된 정보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이번 문제에 함께 맞서야 함을 역설했다. 남 교수 또한 “국민들의 지지가 없다면 언론내의 문제해결은 정부와 맞서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SNS를 통해 언론파업을 공론화해서 언론파업문제가 잘 해결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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