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이 차게 불던 부산 한진중공업 앞.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사측과 노조측이 오랜 갈등을 빚은 한진중공업 현장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한금선 씨를 만났다.

한겨울날 밤길을 걷다 마중 나온 엄마를 만난 듯, ‘사진’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음이 말하는 대로 그들을 담다

그의 사진은 노동자의 시위 현장은 물론, 서울역 앵벌이 아이들, 동유럽 집시,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다. 거의 초기 작업이었던 서울역 앵벌이 아이들을 찍은 작업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됐다. 그는 “서울역을 산책하듯 걷고 있었는데 한 앵벌이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며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 아이는 “다른 애들이 나랑 안 놀아줘. 나랑 같이 놀자”라고 말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가 ‘한금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같은 한 씨네”라며 다른 아이들에게 우리 누나라고 그를 소개했다. 그 말 한마디에 그는 ‘껍데기가 열렸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당연히 무서웠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며 겉으로는 더럽고 험악할 것 같던 아이들이 정말 순진한 아이들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아이들을 렌즈에 담으며 그녀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그는 “이처럼 사진 찍는 일은 세상에 대한 편견을 걷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소외된 이웃을 찍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세상에 해야 할 말을 할 뿐이며, 누군가의 삶과 연관이 있거나 정서적으로 많이 ‘끌리는’ 것을 사진에 담는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집중’이 주는 마력이 있다”며 “누군가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으면 이 세상에 사진을 찍는 대상과 나 단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 렌즈를 통해 보는 그 대상은 내게 가장 매력있고 아름다운, 날개 단 천사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 동유럽에서 집시들 사진을 찍었을 때도 언덕 위에서 한 아이를 마주쳤는데 마치 나를 위로하려고 거기에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소통’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한금선 작가는 원래 사진 찍기를 취미생활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취미로 하기에는 사진이 그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는 생각에 사진작가로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아닌 다른 분야의 사진작가들과 커다란 차이는 없어요. 단지 ‘무엇과 소통하는가’가 중요하죠”

하지만 소통을 통한 ‘사진’이라는 결과물이 세상에 많이 보여지지는 않는다. 사진작가들만의 잡지가 많이 없고, 신문에 실리는 사진은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기자들이 찍다보니 사진작가들이 자유롭게 찍는 수많은 사진들이 실릴 지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서도 그녀는 현장에서 숨 쉴 수 있고 그 속에서 사람을 ‘진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매력으로 꼽았다.

 

한진중공업 현장 속에서 그들과 함께!

지난 8월 한 작가는 그를 포함한 23명의 사진작가가 함께한 한진중공업 사진집 ‘사람을 보라’를 발간했다. 그는 “한진중공업 사진 작업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진행되었고, 경찰이 막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뷰를 했던 그날도, 기자들을 노사합의 현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사측에서 막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사 총회를 시작하는 2시 쯤. 많은 취재진이 몰렸지만, 기자실 외에는 기자들의 출입이 통제됐다. 그는 “언론에 나가면 사회적 파장이 생긴다는 이유로 취재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 없는 사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지난 희망버스 시위 때는 기자 2~3천 명이 노동자분들이 내준 사다리를 타고 넘어가 취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 인력이 동원돼 담벼락에 붙어선 기자들을 저지하곤 했지만, 많은 기자들과 함께 그 또한 담벼락을 넘어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을 찍는 그의 모습은 거침이 없었다.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현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담을 넘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진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노동자가 잘 사는 나라를 꿈꾼다

그는 4대강 사업이나 노동자 억압에 대해 ‘열라’ 반대한다고 표현했다. 때문에 그동안 4대강, 용산 참사, 희망버스 등의 현장에 함께 해왔다. “기득권층은 희망버스에 가는 사람들은 다 빨갱이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선동자라고 한다”며 “노동자를 억압하는 현 정권의 정책, 행위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언행들, 욕설은 물론 사람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끌고 가거나 하는 모습을 볼 때면 화가 나고 아버지 생각도 난다고 했다. “권력자들 눈에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라 ‘저것’에 불과하고, 경찰에게도 그저 진압 대상일 뿐이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사람으로 보이면 어떻게 그런 폭력을 행사하냐”고 담담하면서도 강하게 얘기했다. 그는 “대기업이 경제를 살린 것은 맞지만 그 뿌리는 노동자다. 나라의 힘은 노동자에게서 나와야 한다”며 “회사 측은 크레인 위에서 309일째 농성을 하는 김진숙 위원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날 한진중공업 노사총회가 이뤄졌다. 노조와 회사 측은 1년 내 재취업, 민사형사 소송 취하 등에 합의했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제서야 크레인 아래로 내려왔다.

“사진은 언어다. 세상이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곳에 가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한다”

진실이 뭔지는 모르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 기자가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은 사진기를 들고 높은 담벼락을 넘어 현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서 강인하고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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