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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칼럼

30억 살 한반도의 세월을 모아봤다, 경북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멸종된 동물의 박제, 공룡의 뼈와 발자국 화석, 신비스런 빛깔을 뽐내는 광석들, 이들 모두 군위군에 소재한 본교 자연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본교 자연사박물관에는 다양한 동·식물 표본과 화석, 지질 자료를 소장 중인 자연사박물관이 있습니다. 30억 년 역사의 한반도 자연을 고스란히 담은 이곳에 들러 소장품들,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자연사박물관을 묻다 본교 자연사박물관은 2004년 5월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현재 이곳은 ▲야생동물관 ▲물속생명관 ▲공룡 화석관 ▲지질 암석관 ▲곤충관 ▲식물 자원관 ▲조류생태관 ▲체험영상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약 6만 3천 점의 표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개관 이후 매년 1만여 명 정도의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본교 자연사박물관 관장인 장우환 교수(농생대 농경제)는 “생물 다양성 보존이 중요한 상황에서 유전자 자료 구축은 매우 핵심적이다”며 “본교 자연사박물관이 자연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 관리, 보존, 전시를 함으로써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험과 교육의 공간 본교 자연사박물관은 대구·경북 지역의 첫 자연사박물관으로, 지

수제화골목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
대구 향촌동 수제화골목은 1970년대부터 수출 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형성됐다. 1990년대만 해도 골목 내의 여러 수제화 장인들이 백화점을 통해 판매망을 확보하는 등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IMF를 겪고 2000년대에 들어서며 값싼 기성화 산업이 발달하면서 수제화골목은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으나, 지금까지도 여러 수제화 장인들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수제화골목 장인들과 중구청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골목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2017년에는 향촌수제화센터를 열어 수제화골목의 역사를 정리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변화한 수제화골목과 수제화골목에 방문한 시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1. 향촌수제화센터 4층에서 매호중학교 학생들이 ‘가죽지갑 만들기’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수제화를 제작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여러 기술이 필요하므로 수제화센터에서는 가죽에 망치로 구멍을 뚫고, 실로 꿰는 기본적인 가죽공예를 통해 지갑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1학년 이재은 양은 “오늘 수제화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됐다”며 “가죽지갑을 만드는 것은 재미있지만 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에 되돌아보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올해 칼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전세계적으로 그의 사상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고 있다. 본교 신정완 교수(경상대 경제통상)의 설명을 통해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고 마르크스주의의 미래를 살펴보자●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올해 2018년은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 탄생 200주년이다. 독일과 중국 등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엔 올해에 마르크스 관련 서적이 몇 권 출판되고 소규모 학술행사가 열렸거나 열릴 예정이지만, 크게 주목할 만한 행사 없이 2018년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마르크스는 20세기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매우 중요한 사상가다.마르크스는 1818년에 프로이센에서 유대인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르크스는 청년 시절에 헤겔의 철학을 깊이 공부했고, 헤겔 철학을 급진적으로 해석하는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혁명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당시 권위주의적 프로이센 국가를 비판하다가 탄압을 받아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 파리에서 사회주의자·노동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더 급진적인 이념을 받아들였고 이 시기에 공산주의자로 변모한다. 1848년에는 유럽의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예술가. 2018 대구 근현대 문화예술인물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격동의 한국 역사 속, 대구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들을 기억하는가? 대구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인 가치확산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대구를 대표하는 근현대 문화예술인물을 선정해 기념한다. 올해 선정된 인물은 ▲경쾌하고 기교적인 필체의 서예가 회산 박기돈 ▲깊은 감성과 섬세한 감각을 지녔으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시인 이장희 ▲한국적 리얼리즘 영화의 선구자 영화감독 이규환 ▲한국음악의 세계적 보편성을 제시한 음악가 하대응이다. 당대에 대구를 빛냈던 문화예술가들의 생애와 업적을 대구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가상 인터뷰로 들여다 봤다● 서예가 회산 박기돈 Q. 서울의 양반가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구에는 어떻게 정착하게 됐나?A.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 가문 출신이다. 20세 무렵에 스승 시암 이직현 아래에서 유학과 서예를 공부했고, 1901년 영광스럽게도 29세의 나이에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정3품인 통정대부에 임명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김에 분개한 나는 관직을 내놓고 서울을 떠났다. 그 후 상해로 망명하려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대구에 정착하게 됐다. Q. 스승 이직현은 어떤 분인가?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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